내가 바람이 된다면
구인모
4:13내 안에는 참 많은 네가 살아 햇살에 반짝이던 머릿결 잠에서 막 깨어난 목소리 마주했던 손바닥의 촉감 어느 것 하나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머물러 스쳐갈 줄 알았던 인연이 하루를 물들이고 계절을 바꾸고 내 삶을 바꾸어 놓았지 그날의 파란 하늘 가볍게 불던 바람 네가 웃을 때마다 흔들리던 나뭇잎 그림자까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던 너 익숙한 침묵 속에 숨겨진 마음도 내 안에는 네가 했던 말들이 살아 있어 무심히 내뱉은 말조차 내겐 깊은 울림이 되어 밤마다 다시 되뇌어지는 문장이 된거야 싸우고 등을 돌리던 날도 있었지만 네가 웃으며 내 손을 잡던 그 순간 모든 오해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 이젠 너는 없는데 현실의 어디에도 손이 닿는 그 어떤 곳에도 네 모습은 없어 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너로 가득해 너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날조차 무의식은 너를 먼저 떠올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가도 익숙한 향기 하나에 문득 무너져버려 네가 좋아하던 음악이 거리에서 흘러나오면 그 자리에 멈춰버리네 내 안에는 계속되는 너의 계절이 있어 봄이면 다시 네가 피어나고 여름이면 함께 걷던 파란하늘이 그립고 가을이면 낙엽에 편지를 쓴다 겨울이면 더욱 선명해지는 네가 남긴 눈길의 발자국들 사랑은 끝났지만 기억은 살아 있어 내 안에는 오늘도 네가 있다 조용히 내 곁에 앉아 지나간 시간을 쓰다듬고 있어