거미와의 적당한 거리

우리 집 베란다 그 구석에
매년 똑같은 자리의 거미줄
천장과 벽 원주 세븐 파이
어쩜 그렇게 정확한 거야

넌 저녁에 출근하고 낮에 들어와
나는 아침 햇살 속에서 깨어
하늘을 담고 너를 담으며
아이폰으로 널 찍던 그때들

내 눈엔 구름 너에겐 벌레들
각자 다른 하늘을 보고 있었지만
그 섬세한 실 한가운데에서
우린 조용히 마주할 수 있었어

친구가 되는 운명 같은 합의
그 얇은 틈 하나 사이로
나는 너를 너는 나를 지켜줘
그건 자연과 나눈 조용한 약속
너는 벌레를 나는 까마귀를
서로의 적으로부터 몸을 돌려줬지

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지만
손이 닿지 않는 그 거리에서
넌 매년 그 자리로 돌아와
새끼를 위해 다시 줄을 치네

필요에 의해 친구가 됐지만
그건 지구를 대하는 사람의 방식
애정도 미움도 아닌 채로
'존중'이란 말로 이어진 인연

친구가 되는 운명 같은 합의
그 얇은 틈 하나 사이로
나는 너를 너는 나를 지켜줘
그건 자연과 나눈 조용한 약속
하늘과 구름 그리고 거미줄이
모두 조화롭게 담긴 한 장의 사진

오늘도 넌 그 자리에 있고
나는 널 찍으며 미소를 짓지
그 거리는 우리만의 약속
영원히 친구가 되는 방법이었어